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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천서원(臨天書院)은 안동시 송현동 740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임천서원은 헌종(憲宗) 13(丁未, 18470)에 세웠으며 문충공(文忠公) 김성일(金誠一) 선생의 위폐를 봉안한 서원이다.
학봉(鶴峯)선생이 선조(宣祖) 26년(1593) 4월 29일 진주(晋州)공관에서 돌아가시고 14년 뒤인 선조 40년(1607)에 선생의 학덕과 공훈을 기려 일향의 선비들이
"선생의 상자지향(桑梓之鄕 : 대대로 살아 내려오던 고향)에 조두지소(俎豆之所 : 제사를 모시는 곳)가 있어야 한다."는 뜻에 따라 당시 안동부사(安東府使)로 와 있던 한강(寒岡) 정구(鄭逑)선생이 임하현(臨河懸) 서쪽에 옛 서당에다 사묘(祀廟)를 세우고 향사했다. 한강선생은 글을 지어 말하기를 "충의는 골수에 박혔으니 도리는 심장에 가득히 찼다는 옛 선현의 말을 공이 진실로 받았다.(忠義骨髓 道理心腸 古人此語 公實承當)"라 하였다.
그리고 11년 뒤인 광해군(光海君) 10년(1618) 임하향사(臨河鄕社)를 승격시켜 서원이라 했다. 이것은 한강 정선생의 의론에 쫓은 것이다.
다시 2년 뒤 위판을 여강서원(廬江書院)으로 옮겨 퇴계(退溪)선생을 주벽(主壁)으로 학봉선생과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을 나란히 배향하였다.
헌종 13년(1847)에 학봉선생을 주원(主院)으로 선생의 퇴휴지소(退休之所)인 석문정사(石門精舍) 서쪽 엄곡(淹谷)에 복설하였으나 고종(高宗) 5년(1887)에 대원군(大院君)의 서원 훼철령에 따라 전국의 여러 서원과 함께 페원되었다. 그리고 22년 뒤인 순종(純宗) 2년(1908) 10월 20일 장예원(掌隸院)의 정식 준허를 얻어 지금의 자리인 송현동의 호암촌(湖巖村)에 복설하였다.
임천서원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6호(1985. 8. 5)로 지정되었다.



임천서원의 묘우(廟宇)이다.



임천서원의 강학당(講學堂)이다.



이 서당은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870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조 말 영남의 유림을 대표하던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 공의 강학지소이다. 이 서당에는 소계서당(邵溪書堂)의 현판과 서산(西山)이란 공의 아호(雅號) 현판도 게판되어 있다.
김흥락(1827-1899) 공의 자는 계맹(繼孟)이고 호는 서산이다. 학봉 선생의 11대 주사손으로 탄와(坦窩) 김진화(金鎭華) 공의 맏아들이다.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퇴계학맥의 적통(嫡統)을 이었으며, 영남학파의 종장(宗匠)으로 추앙받았다. 특지로 천거되어 승문원(承文院) 우부승지(右副承旨), 영해부사(寧海府使)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